한때 프리미어리그는 거인들의 무대였다. 알렉스 퍼거슨 경과 아르센 벵거가 치열하게 맞섰고, 뒤이어 조제 모리뉴가 그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에는 위르겐 클롭이 펩 과르디올라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과르디올라는 클롭의 도전에 맞서 자신의 전술에 변화를 줬고, 결국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음 시즌은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1992년 이후 처음으로 다섯 명의 거물 감독이 모두 사라진 시즌이 된다. 퍼거슨도, 벵거도, 모리뉴도, 클롭도, 과르디올라도 없다.


프리미어리그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영웅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분노로 팀을 지배하던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브로콜리와 절제된 생활을 미덕으로 만든 사람은? 기자회견장을 또 하나의 경기장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게겐프레싱의 대가는, 포지셔널 플레이를 설파하던 냉철한 철학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는 제법 흥미로운 압박 전술을 도입한 감독만 나타나도 새로운 영웅이라 부른다. 진정으로 이 무대의 승부를 즐길 인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빌 앤더슨 같은 향수에 젖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프리미어리그가 예전보다 다소 작아 보인다고 느낄 수 있다. 레지 르 브리스는 불과 두 시즌 전 선덜랜드 지휘봉을 잡았는데도,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네 번째로 오래 재임한 감독이 됐다. 지난 시즌 그의 조용한 지도력은 인상적이었지만, 차분하고 절제된 성격의 이 브르타뉴 출신 감독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장수 재임 감독인 미켈 아르테타와 우나이 에메리가 맞붙는 경기도 당장 ‘거인들의 충돌’처럼 느껴지기는 어렵다. 에메리가 아르테타의 아스널 전임 감독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토트넘은 지난 3월 로베르토 데 제르비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런데 승격팀들을 제외하면, 그는 벌써 현재 프리미어리그 감독 11명보다 오래 자리를 지킨 사람이 됐다. 오래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익숙한 주인공이 떠나고 새로운 인물이 그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지금 프리미어리그도 그런 세대교체의 한가운데에 있다. 새로운 감독들이 팬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저마다 어떤 개성을 지녔는지, 무엇이 강점이고 약점인지를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번 시즌은 근래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프리미어리그는 이미 아스널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머지않아 아르테타가 잉글랜드 축구계를 거대한 존재처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그 우승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오랜 기다림 끝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엄청난 감정을 쏟아낸 뒤에는 더욱 그렇다. 데클런 라이스와 부카요 사카는 월드컵에서 그다지 활력이 넘쳐 보이지 않았고, 윌리엄 살리바는 허리를 다쳤다. 아스널이 시즌 초반에 다소 부진하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틈을 이용할 준비가 된 팀은 누구일까? 최근 두 시즌의 리그 우승팀은 모두 새로운 감독의 지휘를 받는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과르디올라의 뒤를 이은 엔초 마레스카는 독특한 감독이다. 그의 성적은 실제로 그의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받는 인상보다 좋은 편이다. 마레스카가 떠난 뒤 첼시가 부진하면서 그의 평가는 높아졌지만, 레스터와 첼시 팬들이 한때 그의 지나치게 신중한 축구에 얼마나 답답해했는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르네 슬롯은 리버풀에서 거물 감독의 뒤를 잇고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한 구단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감독을 계승하는 일은 여전히 엄청난 도전이다.


안도니 이라올라는 라요 바예카노와 본머스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아무리 침착해 보였던 사람이라도 리버풀 같은 구단에서 쏟아지는 훨씬 강한 관심과 검증에 어떻게 적응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라올라가 이끌었던 본머스가 경기 막판에 자주 실점했다는 점도 여전히 우려스럽다. 선수층이 두꺼워지면 이 문제가 곧바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선수들의 체력과 출전 부담을 관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챔피언스리그까지 병행하면 상황은 결코 더 쉬워지지 않는다. 이라올라는 언제나 체력 소모가 극심한 훈련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유럽대항전의 일정을 감당하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훈련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이클 캐릭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캐릭은 지난 시즌 맨유가 사실상 자신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할 수밖에 없을 만큼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영입은 선수단에서 보강이 필요했던 부분을 적절하게 채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캐릭이 여러 대회를 동시에 치르는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맨유는 지난 시즌 상대 팀보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가운데 리그 3위를 기록했다.


현대 축구의 일정은 워낙 가혹하기 때문에, 결국 어떤 감독의 역량보다 피로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맨유가 보여줬듯이, 빅클럽이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낸 뒤 반등하는 비결은 아예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할 정도로 크게 부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첼시에는 매우 좋은 소식이다. 첼시는 유럽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사비 알론소를 보유하고 있다. 알론소에게는 자신의 축구를 팀에 정착시킬 시간이 있으며, 첼시 선수들은 이번 시즌 거의 모든 경기에서 상대보다 더 좋은 체력 상태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에메리는 유로파리그를 지배해왔다는 사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최정상급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애스턴 빌라가 모건 로저스의 강력한 중거리 슛이 골문 구석에 꽂히는 것 이외에도 경기를 이길 방법을 찾아낸다면, 에메리에게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낼 좋은 기회가 있다.


주인공이 될 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데 제르비도 챔피언스리그 진출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토트넘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단을 보강했고, 유럽대항전에도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물들은 떠났지만, 이는 프리미어리그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뜻일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다음 지배자가 되느냐를 둘러싼 경쟁이다. 현재로서는 아르테타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지만, 도전자는 수없이 많다. 이 무대는 다음 거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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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U Off the Field's Opinion


최근 축구계를 바라보면 감독의 위상과 권력이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비 알론소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알론소는 스타 선수들에게도 조직적인 압박과 수비 가담, 전술적 규율을 요구했지만 선수단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와의 충돌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도 구단은 감독의 권위를 확실하게 세워주지 못했다. 알론소가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가 선수들을 통제할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이 2013년 은퇴한 이후 마이클 캐릭까지 7명의 정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철학과 재건 계획이 발표됐지만, 성적이 흔들리면 기존 계획을 지키기보다 또 다른 감독과 새로운 출발을 선택했다. 첼시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빠르다. 2021년 토마스 투헬 부임 이후 사비 알론소까지 약 5년 동안 6명의 정식 감독을 선임했다. 장기 계약이 구단의 인내와 신뢰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감독이 성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것은 감독에게 허용되는 시간과 실패의 폭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전술을 선수단에 입히고,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며, 시행착오를 거쳐 팀의 정체성을 완성할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경기력과 결과를 모두 증명해야 한다. 구단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감독에게 요구하는 성과와 완성도의 기준은 오히려 높아졌다.


감독의 역할 자체도 달라졌다. 과거의 명장들은 선수 영입부터 훈련과 전술, 라커룸의 규율과 구단 문화에 이르기까지 팀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구단주와 경영진, 스포츠 디렉터와 영입 조직이 권한을 나눠 갖는다. 감독은 구단 전체를 이끄는 절대적인 지도자라기보다, 이미 구성된 조직과 선수단 안에서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헤드 코치’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같은 명장이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퍼거슨과 벵거, 클롭과 과르디올라는 처음부터 완성된 거인이 아니었다. 구단의 믿음과 충분한 시간, 선수단을 통제할 권한과 오랜 경쟁을 통해 축적된 서사가 그들을 한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실패할 기회도,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밀어붙일 권한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시대에 과거와 같은 명장이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프리미어리그가 기다리는 다음 거인은 한 명의 감독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독이 바뀌어도 같은 방향을 유지하는 구단의 시스템과 조직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기억하게 될 새로운 시대는 어느 감독의 이름이 아니라, 감독마저 하나의 부품으로 활용하는 구단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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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Jonathan Wilson, “The five big beasts are gone: who will be the Premier League’s next alpha manager?”, The Guardian, 2026. 8. 2.

이미지: Getty Images·Reuters / The Guardian

번역: SNU Off the Field 김필립